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예천군 용궁면을 지나갔다. 한번 가서 본 적이 없었던 회룡대와 회룡포 전망대에 갑니다. 이었다.
회룡포 봄꽃축제를 알리는 매달기 막과 꽃밭을 조성하면 한가운데 트랙터로 밭을 정리하고 있다.
집 사람이 회룡포호 공원 부근의 보리밭을 그리는 동안 회룡포 동네나 구경하자 길을 갔다.
여기로 돌아가야 했지만..
돌이켜 모두를 넣어 와야 했지만, 다른 뿅뿅 다리를 한번 건너 봐야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회룡포를 뒤로 하고 전망대까지 올라간다.
회룡대에서 찍으면 아래 회룡포 전망대의 소나무가 시선을 덮는다.
회룡대와 회룡포 전망대에서 내성강으로 내리는 길도 무시됐다. 간단히 말하면, 단지 절벽에 덱을 깔은 것이다. 소나무 잎이 떨어지고 제법 조심스럽게 내려오지 않지만 미끄러지면 큰 날이 될 정도다. 그렇게 고도 100m에서 250m 가까이 오르고 다시 150m를 갑판 길로 내려야 한다.
이 길에 내리기 시작했다.
우치조강을 따라 길을 만들자 포크레인에서 작업해 보니 나무들이 많이 부서졌다. 모두 주위가 문제다. 끝, 지금은 평지를 따라가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큰 바위를 만나 길을 만들지 않고 다시 100m 정도를 등산해야 했다. 집 사람이 먼저 도착해 밖에 있는지 보고 굉장히 산을 오르면 목도 마르고 숨도 식어,..이날은 티맵의 하탄짓으로 개고생한 날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회룡포를 내려다보았다.
오늘의 역사 1614년 3월 19일(음력 1614년 2월 10일) 영창대군이 사망했다. 어려운 왕이 된 광해군의 북인 정권은 서인 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광해군의 계모인 눈 대비를 지금의 덕수궁인 경운궁에 유폐시켜 왕위 계승을 라이벌로, 눈길을 대비한 아들 영창 대군을 죽이는 계몽옥사를 일으킨다. 이를 어머니를 폐해 동생을 죽인다는 의미에서 숙모살제라고 한다. 역사상에서는 광해군과 인목대비(소성왕 대비)의 악연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강화도에 유형되어 있던 영창대군을 방에 갇혀 불을 피워 증살시켰다. 당시 불과 9세였던 영창대군이 서투른다. 후일 소인들은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폐모살제를 명분으로 인공반정을 일으켰다. 1862년 진주민란이 일어난다. (음력 1862년 2월 19일) 1993년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가 42년 만에 북한으로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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